투자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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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권하는 사회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모두가 주식투자를 하는 시대가 왔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심지어 9월 1, 2일간 있었던 카카오게임즈 IPO 투자공모에는 58조원의 돈이 몰렸다. 2020년 대한민국 국가 예산이 총 513조원 정도였다. 광풍, 과열의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미쳤다.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장기화로 인해 사람들은 여름휴가도 못 간 채 집안에 고립되었고, 허용된 자유라고는 배달음식과 언택트, 게임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주식이야 말로 얼마나 강렬한 자극이자 유혹인가.
더구나 도박을 사랑하는 무수한 사람들(2018년 기준 강원랜드 방문자수는 한 해 338만명이었으며 마카오 원정 도박인구 역시 추산 70만명을 넘었다.)과 코로나로 인해 카지노 출입이 막힌 이들은 오직 주식투자로 욕구를 달래고 있다.
우리 뇌에는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쾌락을 담당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오는데, 도파민이 많이 나올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주식 투자를 해서 수익을 보는 경우 측중격핵에서 도파민이 급격하게 분출되고, 이 패턴을 우리 뇌는 기억한다. 돈을 버는 긍정적인 경험이 쾌락이라는 기억과 감정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다음 날 주식 투자를 안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 짜증이 나고, 초조하고 좀이 쑤신다.
- 뭔가 안절부절못하게 되고 우울하다.
이것이 ‘금단증상’이다.
또한 첫날 주식으로 10만원을 벌었다고 가정하자. 처음엔 10만원도 '이게 웬 떡이냐'라는 생각이 들고 마냥 기분 좋고 행복하다. 공돈이 생긴 기쁨에, 오늘 저녁은 소고기라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다음날은 어떨까? 똑같이 10만원을 벌어도 첫날만큼 기쁘지가 않다. 당연한 일의 반복인 양 덤덤하고 시큰둥하기까지 하다. 친구가 다른 종목으로 20만원, 혹은 100만원을 벌었단 얘길 들으면 오히려 짜증까지 난다.
똑같은 수준의 보상으로는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이것을 ‘내성’이라 한다.
금단증상과 내성은 인간본성에 기인한 자연법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번 주식 투자로 수익을 맛본 이상, 이 중독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렵다.
“처음 투자할 때 손실을 보면 주식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눈과 귀를 아무리 닫으려 해도, 폭등과 상한가, 실시간 검색 등의 정보를 접하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누구누구가 천만원 투자해서 얼마를 벌었다더라, 200% 수익을 봤다더라'는 등의 소문, 그리고 '저번에는 손실을 봤으니 종목만 바꾸면 이번에는 딸 거야'라는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에도 빠진다.
또한 '친구 A가 손대는 주식마다 다 수익을 보니까 쟤가 사는 주식만 따라서 사면 나도 성공할 거야'라는 식의 hot hand fallacy에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인지적 오류와 왜곡들로 인해 근거 없는 믿음과 긍정심에 고양되어 우리는 실패를 금세 잊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인 중에 처음부터 주식투자를 몇 억씩 하는 사람은 없다. 신용대출이나 미수, 레버리지 상품을 손대는 일도 드물다. 아마 대부분은 코스피의 우량주, 이를테면 삼성전자나 카카오 같은 안정형, 저위험군 종목,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다고 해도 셀트리온이나 엔시소프트 같은 시총 20위안에 종목들에 500만원에서 1천만원 정도로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처음 이들의 목표 수익률은 10~20% 정도이다. 몇 개월 후 목표가에 도달하게 되면 이들은 생각한다. '2천만원을 넣었으면 400만원을 벌었을 텐데. 아니, 대출받아서 1억을 넣었으면 2천만원을 벌었을 텐데'라며 자책한다.
이때부터는 찌라시, 주식정보, 네이버 토론방, 카카오 유료 단톡방들을 조금씩 기웃거리게 된다. 정보나 소스, 작전주, 통정거래 같은 말에 현혹되어 어느새 생전 처음 듣는 회사에 수천만원을 투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비트코인이 그러했듯이 투자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금리가 너무 싸니까 은행에 넣으면 바보다.
2. 그 회사 직원이 알려준 확실한 정보인데 무슨 종목이 오른다더라.
3. 내 친구가 이번에 주식으로 몇 천만원을 벌었다더라.
초심자의 행운이 끝나면 이들 대부분은 돈을 잃게 된다.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알거나 PER, PBR의 의미는 고사하고 동시호가 체결방법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주식투자가 아닌 도박을 하고 있다.
카지노에 들어갈 때 사람들이 항상 착각하는 것이 있다.
1. 나는 남들과 달리 게임을 조금 즐기러 온 것뿐이다.
2. 나는 통제력이 강하니까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다.
3. 게임 전략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카지노에서 손님의 승률이 가장 높은 게임은 바카라(플레이어와 뱅커 측에서 각각 두 장의 카드를 받아 높은 끗수를 겨루는 게임, 둘 중 하나에 돈을 거는 단순한 승부로 홀짝이나 다름이 없다)인데 48 : 52로 카지노가 유리하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어 4% 차이면 꽤 해볼 만 한데? 이길만해!'
그렇지 않다. 단순히 생각해도 100판 이상을 하면 항상 48대 52로, 이기는 횟수보다 4번 더 많이 진다는 의미이고, 항상 똑같은 돈을 걸었다고 가정하면 2차례의 판돈만큼 손실이 난다.
바카라는 한판에 2분도 걸리지 않는다. 즉 많이 하면 할수록 결국 손실이 나게 마련이다.
돈을 잃으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A: ‘5번 연속으로 플레이어가 나왔으니 이번엔 꼭 뱅커가 나올 거야! 1/2 확률이 이렇게 까지 안 맞을 리가 없어.’
B: '5번 연속 플레이어가 나왔으니 이번에도 플레이어가 나올 거야 배팅액을 더 늘려서 크게 먹자.'
이들은 다 자기 딴엔 나름의 계획이 있으며 논리적이라 생각한다. 마틴게일 베팅법, 바카라 전략 등을 공부하며 단계별 변수와 상황에 대한 리미트를 정하고 스스로 이성적이라 여긴다.
A와 B 모두가 아무 근거도 없는 도박 중독자일 뿐이다.
흔히들 말하는 ‘도파민형 인간’이 있다. 위험과 스릴을 좋아하고 모험과 과감한 투자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뇌의 쾌감중추와 보상기전이 일반인보다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다. 뇌 MRI 사진에서 도박중독자들은 보상회로와 관련된 부위, 대상회, 뇌섬엽, 복측 선조체 등에서 대조군보다 훨씬 더 높은 활성도를 보였다.
이들은 평범하고 예측 가능한 일상을 지루해한다. 자극이 없으면 무료하고 패배하는 것 같은 느낌, 무기력감을 느낀다. 가슴이 뛰는, 무언가 새롭고 위험한 것,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찾고 탐색(novelty seeking)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생부터 80대까지 주식을 한다. 스마트폰에 증권 앱을 다운받은 사람 숫자만 해도 수백만명이다. 제로 금리시대, 전례 없는 강력한 부동산 규제로 돈은 빌릴 수 있는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그야말로 ‘주식 권하는 사회’가 된 것이다.
바카라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당신은 어리석다며 웃었을 것이다. 도박의 끝은 결국 패가망신인데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주식을 하는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하는 것은 투자인가, 도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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